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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의 크기, 배후의 힘(사무엘하 17:6-14)묵상, 설교 2023. 7. 14. 16:30
그릇의 크기, 배후의 힘(사무엘하 17:6-14)
0. 말씀배경
지난주는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이, 그토록 신실하던 다윗이 한 순간 눈이 햇까닥 돌아서 어믄짓을 했던 내용을 나눴지요.
왜 어믄짓 했다? 첫 번째는 영적 민감함과 갈급함이 없었다. 두 번째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그리고 다윗이 어믄짓을 통해 인생이 꼬이게 된다고 짧게 언급만 했는데, 그 이후의 줄거리를 요약해서 나누고 오늘 말씀을 나누는게 좋을 것 같아요.
다윗은 밧세바를 후궁으로 들이면서 완전범죄를 꿈꿨지만, 누가 알고 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완전범죄는 없다. 내가 다 알고 있다. 그 죄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다!” 하고 뜻을 전하셨죠.
그래도 다윗은 여전히 마음 한 켠에 순수함이 남아 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 잘못을 지적하면 발끈하잖아요. “증거 있어요?” “봤어요?”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던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네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 물으시잖아요? 가인이 뭐라고 해요? “내가 내 동생 지키는 사람입니까? 나야 모르죠!!” 하고 승질을 내잖아요.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 따먹고 나서 눈이 밝아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숨었을 때 하나님께 아담에게 물어보시잖아요. “네가 어디에 있느냐?” 그랬더니 아담이 뭐라고 해요? “난 잘못 없어요. 저 여자가 먹어보라고 해서 먹은거에요.”
다윗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물어보시는거야. “무슨 일 있었어?”
그럼 보통 자신의 죄를 들키지 않기 위해 뭐라고 하겠어요? “저 여자가 유혹했어요!! 난 잘못 없어요..” 하겠지.
근데 다윗은 그나마 순수함이 남아 있어. ‘망하게 되었다..’ 하면서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옷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했지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돌이키는게 중요해요. 하지만 다윗의 회개와 돌이킴과는 별개로 죄에 대한 댓가는 치러야지.
결국 밧세바가 임신했던 아이는 죽었죠.
그런데 정말 ‘죄’가 무서운건, 그리고 죄에 대한 댓가가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죄가 계속해서 ‘재연’된다는거야.
다윗에게는 여러명의 아내가 있었어요. 그 만큼 자식도 많았겠죠?
그런데 자식들 사이에 강간, 근친상간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복수로 살인이 일어나고 아주 난리야 난리.
이 난리통 속에서 다윗은 공의롭게 잘못을 바로 잡고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했어야 해.
하지만 다윗도 지었던 죄인지라 떳떳하지 않은거야. 그래서 어물쩡 넘어가버렸어.
이러한 공의롭지 못한 모습에 굉장히 실망한 아들이 있었으니, 그게 누구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압살롬”
압살롬은 강간 및 근친상간 당한 누이의 남동생이에요. 그리고 압살롬이 피의자인 이복형 암논을 살해했죠.
그리고 이제 공의롭지 못한 아버지이면서 왕인 다윗을 재끼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 말씀은 시작이 됩니다.
오늘 말씀의 부제목을 정해보자면, “다윗 vs 압살롬”
1. 도입
사람은 저마다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한계를 가리켜 “그릇의 크기”라고 말하지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의 크기는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타고난 성품과 기질에다가 후천적으로 학습한 노력들이 함꼐 어우러져서 그릇의 크기를 만들어내지요.
결국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가 그의 넓이이고 한계입니다. 그릇의 크기와 한계는 자신이 가장 잘 알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도 잘 압니다.
하지만 간혹 저 정도 그릇은 아닌데 큰 그릇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큰 그릇인데 가지고 있는 역량만큼 담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배후에서 무언가 작용하는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브라함 링컨은 객관적으로 볼 때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단 9개월만 다녔습니다. 성격도 좋지 않았지요. 그리고 지방 선거에서조차 낙선을 했던 부족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요. 대통령이 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노예해방을 이룬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지요.
이러한 그의 배후에도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는 자서전에 그 정체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를 나 되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의 기도와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 한 권이었습니다.”
그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죠.
2. 말씀설명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압살롬은 객관적으로 굉장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다윗의 아들, 왕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요.
그는 많이 배웠던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만한 뛰어난 외모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다 자기관리 능력도 뛰어났죠. 모든 면에 있어서 집요함과 끈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백성들을 다윗왕이 아닌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랜 세월 동안 궁전 앞에 자리 펴고 앉아 있었죠. 송사를 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상담을 해줍니다. 듣기 좋고 입에 발린 말을 해서 마음을 사는거죠. 이 일에 무려 4년 동안이나 공을 드릴만큼 끈기와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철저히 계획하고 공들여서 적기에 이르렀다 싶었을 때 역모를 일으켰고 왕을 코너까지 몰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밤만 지나면 아버지인 다윗을 제거하고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바로 직전까지 왔지요. 그때 그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집니다. “12,000명의 군사만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가서 다윗과 함께한 백성들을 두렵게 하고 다윗 주변에서 다 떠나게 하고 왕이 찾는 한 사람, 다윗을 죽이든지 사로잡으면 오늘 밤으로 모든 일은 끝이 납니다.”
사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망설이죠. 과연 이게 옳은걸까? 판단력이 흐려진 압살롬은 한 사람에게만 더 물어보기로 합니다. 바로 후새이지요. 후새는 다윗의 친구이자 다윗의 모사였고 다윗이 광야로 떠나면서 예루살렘에 남겨뒀던 그의 끄나풀이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압살롬이 후새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후새는 아히도벨과 정반대의 제안을 하지요. “12,000명을 데리고 갔다가 낭패만 당하고 돌아올 수 있으니 때를 기다려봅시다. 나중에 다윗의 동선이 파악되면 그때 왕이 모든 군대를 데리고 나가서 전면전을 펼치고 보란 듯이 모든 사람들을 멸절시키십시오!”
그런데 사실 후새의 전략은 말도 안되는 전략이죠. 쿠데타는 시간이 생명입니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대방은 더 철저한 계획과 방어망을 구축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압살롬은 소위 폼나고, 자기를 빛낼 수 있는 후새의 계략을 택합니다.
결국 그의 선택으로 쿠데타는 실패했고,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3. 말씀 묵상
이 지혜롭고 끈기 있고, 집요함으로 자기관리가 뛰어난 사람인 압살롬이 왜 이토록 뻔한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그 원인이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다윗의 구사일생과 압살롬의 패착을 갈랐던 것은 ‘배후에서 무언가 작용했던 힘’, 즉 하나님의 개입 덕분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압살롬이 다윗보다 훨씬 더 유리한 지경에 있었고 다윗은 동이 트기 전에 압살롬에게 잡혀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후새를 통해 압살롬을 코너로 몰아가셨습니다.
매우 지혜롭고 뛰어난 사람이었던 압살롬은 자신의 넓은 그릇을 믿고 방심했습니다. 애초부터 자신이 직접 심판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고 공의롭다는 교만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지혜롭고 뛰어나신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한순간 미련한 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반면 다윗은 도망가는 것 외에는 아니 새벽녘에 기습으로 공격해 오면 붙잡혀 죽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좁은 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여전히 가고 서는 것은 주께 달려있음을 고백하며 그의 주권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배후에서 하나님이 일하셨고, 구사일생 할 수 있었지요.
4. 적용
말씀에 비추어 삶을 돌아봅니다.
저는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 그릇의 넓이가 참 좁은 사람입니다.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이 큰 그릇이 해야 할 일을 맡아 하고 있으니 때때로 굉장히 버겁게 느껴집니다.
주변 목회자들은 일주일에 10번도 넘는 설교를 잘도 하시는데, 저는 1번의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일주일 동안 머리를 싸맵니다. 설교문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파일명이 ‘최종, 진짜 최종, 이제 끝, 진짜 끝,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수십 번의 수정을 거듭합니다.
대학교, 대학원 때도 마찬가지였죠. 친구들은 1시간이면 쓰는 레포트를 저는 혼자 밤 새워가며 한 타씩을 써내려 갔지요.
그때도 저는 제 그릇의 크기를 너무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2배, 3배 더 뛰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기 객관화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노력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굳이 부족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사투할 뿐입니다.
그런데 참 의아하게도 이렇게 부족하고 그릇이 작은 제가, 사실 인생에 있어서 딱히 ‘실패’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니지만 말이죠.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이 ‘가장 의외의 인물 1위’로 저를 뽑을 만큼
제가 목사가 된 것도, 또 지금까지 사역을 해왔던 행보도 제가 가진 그릇의 크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외성이 굉장히 빈번했고 다분했지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사람이 참 어리석은게 어느 한순간에 교만해지더라구요.
‘아.. 지금의 나의 나 된 것은, 나름 한 걸음 더 뛰었던 나의 성실성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다시금 스스로를 객관화 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부족함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선생님들의 뒷 꽁무늬라도 쫓기 위해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가랑이 찢어지는 고통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건회 짧은 고작 20분짜리 영상 한 편을 만들면서 밤낮없이 꼬박 일주일을 쏟습니다.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도 여전히 어렵기만 한데, 선생님들께 직접 물어보기엔 또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귓동냥으로 오늘도 몰래 배우고 있습니다.
이토록 여전히 부족한 제가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마 저에게도 ‘배후에서 무언가 작용했던 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배후에 눈물로 기도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낡은 성경책 한 권이 있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날마다 새벽예배 나가셔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정성과 눈물이
그리고 하찮은 어부와 세리들을 제자로 부르셔서 나의 나 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이고자 하셨던 크신 계획과 인도하심이
제 배후의 힘이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임을 믿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죄인이고 악한 심성도 가지고 있고,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하나같이 다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배후에 계시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그릇보다 훨씬 더 큰 그릇으로 사역할 수 있게 될 것을 오늘도 기대합니다.
때문에 오늘도 은혜의 자리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팔로 안으사 나로 사역을 감당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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